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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 30세가 되는 나, 20대를 정리하며

유목민 라이프도 괜찮았어

by 서샘물 2020. 11. 2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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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로 사는 것도 한달 남짓 남았다. 며칠 뒤에는 정말 만으로 서른이 된다. 

서른. 서른이 되는 기념으로 티스토리 블로그를 만들었다. 엉터리 같은 나의 이십대 시절의 경험담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본격적인 삼십대에 접어들면서 이십대 시절에 찍어놓았던 많은 점들을 선으로 잇는 과정을 하기 위해서이다. 

 

한가지 분야에 커리어를 쌓진 못했지만, 내가 나이를 먹어 죽기 전, 내 20대는 이랬다라고 조금은 피식할 것 같고 그렇다고 후회는 딱히 없을 것 같은 20대를 살았다. 이렇게 말하니까 꽤나 잘 살은 것 같겠지만 전혀 아니고 ONLY 내 기준에서 후회없는 삶을 산 것 같다. 나만의 업은 지금부터 쌓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삶의 속도는 다르듯이. 실패로 점철된 것 같았던 삶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노력들. 그리고 세계여행, 했던 일들을 조금씩 써봐야겠다. 더 지나면 까먹을 것 같으니까.

 

나는 사범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소위 말하는 사범대생의 테크를 타기 위해 휴학 한번 안하고 졸업해서 임용 공부를 했다. 노량진에서 1년,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1년, 기간제 교사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하기 위해 조금씩 과외하며 1년. 졸업하고 총 3년을 삽질했다. 학교 다닐 때 타과 학생들처럼 공모전이니 대외활동이니 한 적 無. 그 삼년 이후로 내 삶을 리부트 시키려고 용기를 냈다. 만약 그 때 이후로 내가 작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내 삶은 셋 중 하나였을 것 같다. 첫째, 임용고시 계속 보아서 임고 합격. 둘째, 그냥 지금까지 계속 임고 붙잡고 있기(기간제 중간중간 하고 학원알바 중간중간 하면서). 셋째, 임고 좀 하다가 공무원 시험으로 갈아타기. 이정도가 됐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정도까지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지 않을까. 임고 합격한다면 그동안의 고생이 괜찮을 것 같지 않냐고? 아니다. 내가 포기를 했던 결정적 이유는 임고 합격을 해도 행복할 것 같지 않아서이다. 행복할 것 같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 행복할건 없을 거라는 느낌으로 계속 해왔던 것 같다.. '안 행복할 건 없어' 라는 미묘한 느낌이 우리의 삶의 변화를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임고를 네번째로 떨어진 날, 예상 가능한 삶을 이제 그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할 수 있는 20대인데 큰 세상을 조금 더 경험해보고 돌아돌아 다시 생각날 때 가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늦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 모,, 이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잃을게 전혀 없었기에 뭐든 시작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해서 임고 중도 포기를 하고 내가 했던 것은, (앞으로 차차 내가 풀어낼 이야기들의 요소들을 간략 정리 하자면)

 

캐나다 워홀이였다. 워홀가려면 그래도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다. 적어도 비행기 값은 끊어야 되니까. 

아침에는 호텔 조식 알바, 낮에는 학원 강의를 하면서 돈을 조금씩 모았다. 그리고 유럽행 티켓을 샀다. 쌩뚱맞게 왠 유럽? 나도 모르겠다. 캐나다 워홀가기 전에 유럽 한번 가고 싶었다. 유럽에서 돌아와서 일주일 뒤 캐나다 워홀을 갔다. 캐나다는 어디든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캐나다 캔모어로 정한 것은 신의 한수인 것 같다. 자연경치는 덤이고 관광지라서 다양한 일에 노출될 수 있었다. 캐나다 워홀 상반기에는 팀홀튼에서 일하면서 파트로 스시집 알바를 하고 쿠바, 미국 한달 여행 후 하반기에는 호텔 레스토랑 서버와 인도 식당 서버 겸 전화 받는 일을 겸했다. 

 

다음은 체코 워홀. 캐나다 워홀을 하고 나니 유럽권 국가 워홀을 한번 더 하고 싶어졌고, 영어권 국가로 갈 생각은 없었다. 이미 영어권 국가를 경험해봐서 체코나 덴마크정도 가고 싶었다. 특히 체코는 캐나다 가기 전 유럽 여행을 할 때 가장 좋았던 나라고, 지금은 ex가 된 파블의 나라이기 때문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였다. 체코에서 한 일은 스냅 회사 콘텐츠 기획, 제작이다. 한국어 강사로도 잡 오퍼를 받았는데 물론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교육과 관련된 일은 워홀까지 와서 하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만 아니라면 한국인에게 관광지로서 각광 받는 프라하에서 일년을 지내면서 회사에서 제공해준 고가의 사진기를 들고 맛집, 축제, 문화 등 프라하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촬영하면서 글을 썼다. 물론 파블이 있어서 파블 가족 행사까지 졸졸 따라가서 촬영도 하고 배우고, 프라하를 제외한 체코의 근교까지 구석구석 갔던 것 같다. 프라하에 놀러온 친구들이나 몇몇 행인들 스냅을 조금씩 찍어주기도 했다.

 

체코에서 워홀을 하다가 카타르 항공 승무원으로 조이닝. 

결론적으로 체코에서의 삶은 캐나다의 삶만큼 만족스럽진 않았던 것 같다. 일년정도 배운다고 해도 잘 구사하기 힘든 언어인 체코어라는 언어적 장벽도 있고 관광지로서의 메리트보다 일상 생활을 하는 메리트로서 큰 나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건 임금이 낮다는 점으로 체코에서의 삶을 조금씩 정리하며 다른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물론 나는 체코를 사랑하고 지금도 너무 가고싶은 나라는 맞다. 여러 경험들을 압축시키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지금까지 전혀 생각치도 않았던 외항사 승무원이 떠올랐다. 우선 이력서의 모든 경력을 주절주절 기재하며 경력증명서를 발급받고 이런 절차없이 오픈 데이에 가서 합격의 유무를 결정하는 클리어함이 좋았다. 오픈 데이가서 안되더라도 에미레이츠나 카타르 항공은 유럽에서 많이 열리기 때문에 가고 싶었던 유럽 나라를 여행할 수도 있으니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한국에서 오픈 데이를 보러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은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많이 될 것 같았다. 11월 말에 급하게 준비할 생각을 했고, 결론적으로 다음해 2019년 1월 포루투갈 리스본 오픈데이에서 합격해서 4월 초에 카타르 항공 조이닝을 하였다.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코로나로 인해 결과적으로 해고가 됐지만,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인 직업인 것은 틀림없다. 차차, 한달반동안 셀프로 카타르 항공 승무원 준비한 이야기도 쓰고 비행 이야기도 써보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좋아했던 일은 하지 못하게 됐지만, 20대 때 경험하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과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시금 생각해서 진짜 30대를 시작하려고 한다. 이제 만으로도 빼박 30. 한국에서는 결혼 적령기다, 취업하긴 늦다, 이런거 무시하고 백수 라이프를 시작한만큼 배우고 싶은 것 배우면서 뭐를 할지 생각해봐야겠다. 예전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던 생각은 나만의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이다. 무언가를 창작하던지 작은 사업을 시작해보고 싶다. 30대 언젠가는 사장 타이틀, 셀프 임플로이드, 디지털 노마드 키워드를 획득하고 싶다. 

 

이 블로그가 출발점이 되길 기원하면서!

(한샘아 이십대 수고했다 ㅠㅠㅠ코로나 죽여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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