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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가 좋아한 캔모어

유목민 라이프도 괜찮았어

by 서샘물 2020. 12. 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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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캐나다 캔모어를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한다. 자연에서 사는 기분이 도시에서 사는 것만큼 짜릿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캔모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촌동네였다. 지금은 이것저것 많이도 생겼다고 하던데, 사년 전 워홀 신생아 출사표를 던질 때만 해도, 나름 야심차게 정착지로 정한 캔모어 버스터미널에 내린 순간 뭔가 잘못됐지 싶었다.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웅장한 산에 둘러싸인 이곳의 아름다움이 이제 정말 혼자라는 외로움에 묻혀버려서 였을까. 산이 주는 고립감이 생각보다 커서 였을까. 물 하나 사러 편의점에 가기 위해 9월 진눈깨비를 뚫고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야 하는 수고가 썩 달갑지 않았던걸까. 9월에 눈바람을 맞아야 한다는 사실도 적잖은 충격이였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엄마 보고싶다. “한샘아, 힘들면 언제든지 한국와.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엄마가 있잖아.” 엄마에게 메세지가 왔다.

이런 내가 정확히 일주일만에 적응을 완료한건 이 새로운 동네와 조금씩 친해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였다. 돈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일자리를 빠르게 알아보는게 나의 본래 계획이였지만 계획을 조금 틀었다. 일자리를 알아보기 전에 이곳에 정부터 붙여보자고. 캔모어의 유일한 게스트 하우스인 평점 7점짜리 6인실 호스텔 베어에서 생활하며 하루에 적게는 두시간씩 많게는 다섯시간씩 걸어다니며 동네를 탐방했다. 사실상 탐방할만큼의 크기도 아니지만 같은 길을 계속 걷고 맥주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벤치에서 베이글도 뜯었다. 걷는 길에 마주치는 캔모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나에게 하나같이 인사를 해주고 어디서 왔는지 물어봐줬다. 이런식으로 대화가 이어져 십오분은 넘게 이야기를 해, 이분들의 손녀와 손자가 뭐하는지까지 알게 되었다. 가는 길에는 한국에서 많이 보이는 길냥이 대신 길토끼가 껑충 뛰어다녔다. 동물원에서 보이는 작고 귀여운 토끼 대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할 것만 같은 커다란 토끼 뛰어다닐 때는 조금 위화감이 들기도 했다. 길을 걷다걷다 한국인을 처음으로 마주친 날, 나는 반가워했다. 그날 왜 그렇게 오지랖 넓게 반가워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 덕에 캔모어의 좋은 장소와 더우드라는 레스토랑에서 수요일 해피 타임 윙이 5불이라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허니갈릭맛이 맛있다는 것까지도.
호스텔 베어에 머무는 동안 친구가 생겼다. 퀘백에서 온 나임. 그림을 잘 그리는 그 친구는 매일 같이 그림을 그리고 나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그 친구와 캔모어 호수도 돌아다니고 시내도 걷고 밥도 같이 먹었다. 그 덕에 내가 몰랐던 장소들 몇군데를 또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엘레베이션 센터에 갔다. 클라이밍, 헬스, 수영을 할 수 있고 도서관, 갤러리, 카페까지 이용할 수 있는 캔모어 주민들의 나름 핫플이였다. 이곳에서 꼭 클라이밍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주민들을 위한 무료 영화 상영도 꽤 자주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시선의 확장이 일어났다. 시선의 확장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것 같다. 이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마음이 울적하면 몸부터 움직여보려고 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캔모어에 살면서 내가 한 일들은 심플하다. 일 끝나면 자전거 타기, 산책하기, 벤치에 앉아 있기, 가끔 등산하기 그리고 리큐어 스토어에서 맛있어 보이는 술 사서 집에서 마시기. 온통 자연이기에 자연을 핫플처럼 누비었던 것 같다. 오늘은 보우강 산책, 어제는 스프링스쪽 산책, 내일은 그라시 레이크, 다음날은 쿼리 레이크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랜덤으로 산책하다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곳이라도 발견하면 무슨 보물을 발견한 양 난리를 치곤 했다. 캔모어의 일년은 보물 찾기 같았다. 같은 자연이라도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보였다. 세 개의 산 봉우리인 쓰리 시스터즈가 캔모어의 상징이라면 상징인데 그 쓰리 시스터즈를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습은 달라진다.

보우강 산책로

일년 살며 처음에 단점이라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장점화 되어버렸다. 심심함, 고립감도 마저도. 심심함은 즐기게 되고, 고립감은 이 속에서 나름의 관계를 맺으며 극복하게 되더라. 가끔 유흥을 즐기고 싶을 땐 차로 30분 거리인 밴프로 갔다. 미친듯이 막춤 추는 클럽에서, 이상한 춤사위를 벌여도 창피하지 않은 그런 촌스러운 클럽에서 2시에 문을 닫으면 피자로 해장했다. 다시 돌아와 또 일하고 자연 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었다. 가끔은 너무 행복해서 뭐하고 싶은 욕심 다버리고 돈벌이 조금만 하면서 여름에 등산하고 겨울에 보드타고 그러고 살자. 그게 행복이지뭐. 이랬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나의 모습이지만. 아직도 한편으론 이런 마음이 묻혀 있기에 조금만 건들여주면 모든게 스르르 무너질 것만 같다.

집 위에 무지개가 뜬 날

캔모어. 다시 돌아가고 싶고 너무 그리운 곳. 코로나가 터지기 전 올해는 꼭 캔모어로 휴가 가겠다는 막연한 계획을 세웠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지만, 기다리면 기회가 오려나? 기다린다. 이곳을 다시 여행할 날을. 다시 살게될 날을. 자연에서 다시 살고 싶다.

*캔모어 다운타운


*캔모어 산책로


*쿼리 레이크


*그라시 레이크

그라시 레이크 물색
그라시 레이크 전망대
그라시 레이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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